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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칼럼〕 주님(酒-)은 어디에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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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9
  • 2026.07.24 07:08
 
 
우리는 인격과 덕망이 뛰어난 사람을 성현聖賢이라고 한다. 마을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산에는 부처님이 계시고, 책에는 공자님이 계신다고 믿는다. 예수님은 사랑을 가르치셨고, 부처님은 자비를 설파했고, 공자님은 인仁과 예禮를 일깨워 주셨다. 생각해 보면 또 한 분의 ‘주님’이 계신다. 그 ‘주님’은 종교적 주님이 아니라 바로‘주님酒-’이다.
 
이‘주님酒-’은 교회에도 절에도, 책 속에도 계시지 않는다. 시장 골목의 허름한 선술집에, 시골 주막에, 결혼식 피로연에, 회갑 잔치에, 여러 송별회에 계신다. 한여름 평상 위의 막걸리에도, 눈 내리는 겨울밤 포장마차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막걸리 사발 속에도, 퇴근길 호프집의 생맥주잔에도,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의 소주잔에도 계셨다. 와인의 향기 속에도, 위스키의 깊은 풍미 속에도, 샴페인의 축배 속에도 늘 다른 모습으로 현현顯現해 사람들 곁을 지킨다. 그래서 술은 신기神奇하다.
 
술은 이름은 달라도 하는 일은 늘 같다. 외로운 사람에게는 말벗이 되어 주고, 지친 사람에게는 쉼표가 되어 준다. 웃고 싶은 사람에게는 웃음을 더해 주고, 울고 싶은 사람에게는 눈물을 흘릴 용기를 준다. 사람들은 술을 마셨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마시고 있었는지 모른다.
 
주님酒-이 베푸는 기적은 성경에 기록된 기적처럼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는 작은 기적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짝사랑하던 총각은 술의 용기를 빌려“사랑한다”는 한마디를 꺼내게 만든다. 상사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던 신입사원은 술자리에서 용기를 얻어 자신의 속내를 말해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과묵한 사람이 노래방에서 노래 몇 곡을 연거푸 부르게 한다. 술은 없던 재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깊이 숨어 있던 용기를 밖으로 불러내는 배짱을 끄집어낸다.
 
어떤 이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미안하다는 말을 술잔 앞에서 꺼내기도 한다“그때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십 년의 앙금을 녹이기도 일순 녹인다.“지난번 도와줘 고맙다.”는 짧은 말이 우정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부모에게 감사하다는 말,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 배우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술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비로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온다. 이것이야말로 주님酒-이 우리에게 베푸는 인간적인 기적이다.
 
물론 술은 사람을 바꾸지는 못한다. 원래 겁이 많던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지도 않고, 평범한 사람을 성인으로 만들지 않는다. 다만 마음속에 숨어 있던 감정을 잠시 꺼내 보여 줄 뿐이다. 그래서‘술자리에서 사람의 본심이 드러난다.’는 말이 생겨났다. 웃음도, 눈물도, 용기도, 외로움도 모두 술잔 위로 떠 올라 거짓을 만들기보다 감추고 있던 진심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러므로 주님酒-의 기적은 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술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막걸리는 서민의 얼굴로, 소주는 친구의 얼굴로, 맥주는 젊음의 얼굴로, 와인은 낭만의 얼굴로, 위스키는 사색하는 얼굴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술은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메신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한잔하시지요."라는 짧은 말 속에 수많은 뜻을 담아낸다. 그 말은 단순히 술을 권하는 말이 아니다.“요즘 힘들지요.”“고생 많았습니다.”“미안했습니다.”“축하드립니다.”“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로 이루어진 주님酒-의 가치이자 기적이다.
 
하지만 가치와 기적에는 반드시 하나의 전제가 있다. 바로 절제다. 절제가 있는 술은 사람을 이어 주는 다리가 되지만, 절제를 잃은 술은 사람 사이 굳건한 다리를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주님酒-은 늘 우리에게 속삭인다.“나를 즐기되, 나에게 끌려다니지 말라.”그 가르침을 지킬 때 술은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고, 사람을 품는 술 문화의 요람搖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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