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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재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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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시간전
■ 박재준 수필가 프로필
◇ 저서 : 전 세계 인류의 희망의 빛(기 처방학)
◇ 수상 : 한전 창립 100주년 기념식 "원자력 영웅상"
          전국환경문학대상 우수상(수필부문) 강원경제신문사
◇ 경력 : 한국전력 31년 근무
         ·에이원공업사 설립 및 경영
         ·원자력관련 기술지도 및 강의
         ·언론사 수필기고 다수 (60여편)
 
 
 
제24회 서울올림픽과 나의 껌딱지 일화(逸話)
 
얼마 전 울산, 태화강변에서『울산광역매일신문사』주최‘연날리기 대회’가 있었다. 배정된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본부석 옆 각종 부스 중 하나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작가 정성수의 친필 사인회’였다. 후딱 일어나 한 권의 책을 집어 들고, 줄의 끝자락에 서서, Ⅱ저자의 말Ⅱ 첫 문단을 읽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신의 계시를 받아 적는 사람인 동시에, 신의 계시를 비판하는 사람이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죄짓지 않는 일이 글을 쓰는 일이고, 가장 죄 없는 사람이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하 생략~. 말미 에는 독자로부터 편지 한 장 받는 날이 올 것을 굳게 믿는다.”고 했다. 해서 내가 미끼에 낚였는지, 아니면 주제넘은 오지랖 넓은 첫 번째 손님이 아닐는지 감히 생각해 본다.
 
순간, 속으로 이런 고약한 양반, 아니면 안하무인의 독불장군인지 갈등의 길목에서 잠시 망설였다. 차례가 되어 신분증을 제시하고 친필 덕담을 받았다. 공짜로 주겠다는데 안 받겠다고 악을 쓸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왕 잡힌 고기인데 끌려갈 필요는 없고 슬슬 시간 날 때마다 소일거리로 읽어보려고 순위를 뒤로 미룰 참이었다.
 
그런데 제목을 일별(一瞥)하니 ˂88올림픽˃이 나를 보채게 했다. 오래전 울산제일일보에 기고한 수필(상품권이 새끼 쳤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대한 기원과 성격 정도는 인용하더라도, 저자 친필 사인 덕에 표절 시비는 자유로울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지 너무 길면, 나의 경험 부분이 줄고, 따라서 재미가 떨어질까 봐 50대 50선에서 타협한다. 하여 저자께 감사와 소감을 담은 답변서 겸 삼빡한 수필 한 편으로 승화(昇華)시킬까 한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스포츠 행사로, 기원전 776년 최초로 개최되었다.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제전으로, 그리스 전역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현대 올림픽은 1896년 아테네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관하는 세계 최대의 스포츠 행사로 자리 잡았다. 평화와 우정, 스포츠를 통한 국제 교류를 강조하는 문화적 상징이다.
 
잠시 책을 덮고 과거로 회귀한다. 전 세계인의 축제라 이목이 온통 코리아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손님맞이도 중요하지만, 축제의 장이 불청객의 장난질로 파투라도 날까 봐 전전긍긍하던 참이었다. 특히 모든 경기 순서마다 혈맥 같은 전기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였다. 현장에서는 전기공급을 책임져야 했고, 자연히 한전의 온 식구들은 구슬땀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월성원자력발전소 기계부 원자로 과장이었던 나에게 들이닥친 심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기계 부분이 전체 설비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안 그랬겠는가? 빠뜨릴 수 없는 그 무렵의 에피소드 한 토막을 소개한다. 아시다시피 그리스에서 채화된 성화는 제주도에서 시작하여 지그재그로 국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릴레이식으로 봉송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동해안 쪽에 자리 잡은 탓에 봉송 루터 일부는 우리가 맡아야 했다. 처음에는 부별로 한 명씩 할당됐는데 우리 부서는 자원자가 없어 간부회의 때마다 독촉으로 성가셨다. 하는 수없이‘성질 급한 놈이 우물 판다’고 그럼 내가 뛴다! 하고 덥석 약속을 하고 말았다.
 
주자 명단이 확보된 후에는 나라에서 전적으로 관리했다. 어쨌든 봉송날짜를 넘길 때까지는 개인의 자유도 없고 함부로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경주시 월성군에서 집합교육과 현장 구보 대형 연습도 여러 차례 해냈다. 특히 유니폼과 신발은 구겨지거나 때가 묻을까 봐 당일까지 잘 보관해야만 했다.
 
1988년 9월 3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아침에 깨끗이 목요 재계와 단장을 하고 사무실에 나타나니 난리가 났다. 서로 주자로 뛰면 안 되겠느냐며 붙들고 늘어지는 해프닝이 벌어져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룬 것이다. 일기도 우리의 정성에 답하는지 쾌청했고 봉송도 무사히 마쳤다.
 
88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를 만방에 선전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부인할 자 있을까? 또한, 신나고 어깨춤이 절로 나는 올림픽 송‘손에 손잡고(Hand in Hand)’는 가수 코리아나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제24회 서울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기념패’와‘봉송 주자 요람’을 간직하게 된 것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세월은 쉼 없이 흘렀지만 가끔은 크산티페(마누라 애칭)의 손길로 기념패가 빛나고 있다는 것은 버리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쁨이 두 배가 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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